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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구산 델 수르’를 방문하다

 

지난 10년간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JTS가 해온 사업을 총정리하는 백서의 자료수집을 목적으로 아구산 델 수르(Agusan del Sur) 도의 3개 학교를 방문했다. 아구산 델 수르 도는 민다나오 섬에서도 가난한 지역으로 손꼽히며, 특히 공산계열 반군인 신인민해방군(NPA)이 정부군과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는 곳이다. 2011년, JTS는 아구산 델 수르 도 ‘로레토’ 군의 ‘몰리’, ‘킬랑콕’, ‘리보송안’ 3개 마을에 학교 건축을 지원했지만, 준공식을 앞두고 안전상의 문제로 방문이 중지되었기 때문에, 학교의 완공이나 운영에 대한 자료가 남아있지 않았다. 다행히 전 로레토 군의원을 지냈으며 JTS를 도와주웠던 앙와스 씨와 연락이 닿아, 10월에 안병주, 이진옥 활동가와 함께 이 지역을 방문할 수 있었다.

함께하고 글쓴이 필리핀 JTS - 송우진 활동가


 

학용품을 받는 몰리 학생들

 

아구산 델 수르 지역은 JTS 사업지 중 가장 먼 곳이다. 이곳을 방문하려면 새벽 4시에는 출발해야 했기 때문에, 꼭두새벽에 일어나 짐을 싸고 숙소를 나왔다.성실한 운전사 차리토 씨가 우리보다 먼저 나와 차에 시동을 걸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잘 닦인 해안도로를 달리니 기분이 상쾌했다. 그러나 아구산 델 수르도로 들어서니 길옆에 수많은 필리핀 국립경찰(PNP)과 정부군 초소가 보였고, 이내 긴장되기 시작했다.

로레토 군에 가까워지니 밀림 사이로 뚫린 비포장도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끝이 보이지 않는 수풀과 나무뿐이었다. 이런 경험은 난생처음이었다. 우리는 거대한 밀림 한가운데를 달리고 있었다. 이쯤 되니 길을 잘못 든 게 아닐까 걱정이 됐다.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내려서 현지인에게 길을 물어가며 이동하다 보니, 오후 5시가 되어서야 겨우 로레토 군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군청에서 군수님과 리키 씨를 만날 수 있었다. 리키 씨는 앙와스 씨의 동생이며 로레토 군 교육청에 근무하고 있었고, 몰리로 가는 여정에 우리를 안내해주실 분이었다. 군수님은 방문에 필요한 차량과 운전사, 안전요원, 그리고 도시락을 지원해주겠다고 하셨다.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 두 분에게 감사했다. 우리가 오기 전 선배 활동가들이 쌓아온 신뢰가 있었기에 이러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분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일행은 리키 씨가 소개해준 여관에 들어가 피곤한 몸을 뉘이고 휴식을 취했다. 무려 11시간 동안 차를 운전한 차리토씨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몰리 마을 사람들과 함께

 

다음 날 아침. 리키 씨와 군수님의 전속 보디가드, 경호원 일행과 함께 몰리로 향했다. 차를 타고 가던 중 진창길이 나와서 오토바이로 갈아탔지만, 얼마 뒤 오토바이도 가지 못하는 길이 나왔다. 별수 없이 내려서 걸어가야 했다. 이 지역은 물이 풍부해서 그런지 벼농사를 짓고 있었다. 드넓게 펼쳐진 논을 보니 우리나라 시골길을 걷는 느낌이 들어 정겨웠다.

1시간 남짓 걸어서 몰리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진으로도 볼 수 없었던 완성된 학교 건물을 눈으로 직접 보게 되어 가슴이 벅찼다. 교실을 가득 메운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우리를 반겨주자 기쁨은 배가 됐다. 이 학교에는 총 73명의 학생이 수업을 받고 있었다. JTS가 지원해준 교사숙소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가져온 연필, 공책 등 학용품을 학생들에게 나누어줬다.

이후 마을 리더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현 마을 리더인 라밀 살라자르 씨는 이번에 새로 선출된 젊은 리더였다. 2011년 당시 학교건축을 함께했던 전 리더 알렉산더 씨는 농사일하러 밖에 나갔다고 했다. 그분을 직접 만나지 못해 아쉬웠지만, 라밀 씨로부터도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인터뷰를 마치려는 찰나 알렉산더 씨가 나타났다. JTS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농사일을 젖혀두고 온 것이었다. 덕분에 알렉산더 씨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알렉산더 씨의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이 마을은 공산계열 반군인 NPA가 지나가거나 잠을 자고 가긴 하지만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외부인들이 이 마을을 NPA 본거지로 오해하고 “몰리 사람들은 모두 NPA”라는 소문이 퍼졌다고 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곳 학교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모습보다 명백한 평화의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잡초로 둘러싸인 킬랑콕 학교

 

정오가 되자 마을 사람들이 고기반찬과 쌀밥, 삶은 카사바를 푸짐하게 차려줬다. 그런데 우리의 식사가 끝나고 나니, 마을 어른들부터 차례로 나와 남은 밥과 반찬을 덜어가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이 만찬은 우리 일행과 마을 사람들이 함께 먹을 식사였는데,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먼저 먹도록 배려해준 것이었다. 너무나 죄송스럽고 감사했다.

숙소에 돌아온 뒤 우리를 안내해준 리키 씨와도 작별했다. 리키 씨는 이후에 JTS가 이 지역에 사업을 재개한다면 적극적으로 돕고 싶다고 했다. 단 이틀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헤어지려니 섭섭했다. 잠시 로레토의 거리를 산책하던 중, 우연히 앙와스 씨를 만났다. 내일부터는 앙와스 씨가 우리와 일정을 함께할 예정이었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일찍 숙소로 들어가 쉬었다. 더욱 힘든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두 번째 코스로 산속 깊숙이 위치한 킬랑콕 마을로 향했다. 산을 넘는데 무더운 날씨에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중간에 강도 세 번이나 건너야 했다. 이렇게 맨몸으로 가기도 힘든데, 주민들은 그 무거운 자재를 들고 옮겨 학교를 지었다는 걸 생각하니 정말 대단했다.

한 시간 남짓 걸어서 킬랑콕에 도착했다. 몰리 마을과는 다르게, 이 마을에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고 학교도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연유를 들어보니, 학교가 완성되고 나서 2013년 초까지는 정상적으로 운영되었지만, 그 뒤로 NPA가 마을을 점거하여 선생님들이 떠나버렸다고 한다. 학교 건물은 NPA에 접수되어 숙소 겸 사상교육과 전투기술을 가르치는 곳으로 전락했다고 한다. 그 후 정부군의 대대적인 소탕작전이 개시되어, 마을 주민 중 4가구만 남고 모두 대피했다고 한다.

현재 대부분의 NPA가 이 지역을 떠났고 정부군의 작전도 마무리 단계이지만, 아직 안전을 장담할 수 없고 정부의 승인도 나지 않았기 때문에 주민들이 돌아올 수 없다고 한다. 힘들게 지은 학교였을 텐데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웠다. 


킬랑콕 마을 리더와의 인터뷰

 

킬랑콕 마을을 떠나기 전 마을 리더 마스칼로 보켈시코 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가축과 전답이 모두 여기 있어 차마 마을을 버리고 떠나지 못했다고 하며, 하루빨리 평화가 정착되어 마을 사람들이 돌아오고 학교가 운영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이념대립으로 인한 내전을 겪고, 가족과 친지들이 헤어져야 했던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가 떠올랐다. “JTS가 우리를 잊지 않고 다시 찾아와줘서 너무 행복합니다.”라는 그의 말이 내내 떠올라 가슴이 먹먹했다. 하루빨리 이 지역의 안전 문제가 해결되고, 주민들이 돌아와 학교가 운영될 수 있기를 바란다.

킬랑콕을 뒤로 하고 일행은 다음 목적지인 리보송안으로 향했다. 리보송안 마을은 이번에 방문하는 3개 마을 중 가장 가까운 곳이었지만, 가는 길에 보기에도 아찔한 외나무다리를 3번이나 건너야 했다. 어린이가 다니기에는 무척 위험해 보이는 길이었다. 이 마을에는 학교가 정말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에 도착하니 마을 의원 길예르모 파블로 씨와 주민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학용품을 나눠주려고 하니, 당혹스럽게도 학교는 문을 닫았고 선생님들도 보이지 않았다. 연유를 들어보니 학교가 문을 열고 이듬해 4월까지는 운영되었으나, 이 지역에서 정부군의 대대적인 NPA 소탕작전이 벌어져 선생님들이 철수했다는 것이었다. 앙와스 씨가 다음 주부터는 선생님들이 돌아와 학교 운영이 재개된다고 설명해주었다. 그래서 파블로 씨에게 학용품을 맡기고 선생님들이 돌아오면 학용품을 나눠 달라고 부탁했다.

떠나기 전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지은 교사숙소를 볼 수 있었다. 백서 작업을 위해 서른 곳이 넘는 마을을 답사했지만,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교사숙소를 지은 곳은 처음이었다. 가진 것이 변변치 않고 생계를 위한 농사일에 바쁜 사람들이 공사에 참여할 짬도 없었을 텐데, 누구의 도움도 없이 이 정도의 건물을 짓다니. 감탄을 넘어 마을 사람들에게 존경심까지 들었다. 


리보송안 학교 전경

 

모든 일정을 마치고, 우리와 동행하며 친절하게 안내해 준 앙와스 씨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2011년에 JTS를 만나, 함께 학교건축 사업을 했던 인연을 잊지 않은 것이 고마웠다. 헤어지기 전 앙와스 씨에게 서로를 기억하자는 의미로 한국의 천 원권 지폐를 선물했다.

아구산 델 수르 방문은 평화의 중요성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게끔 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끔 인터넷 뉴스와 필리핀 신문을 보면, 정부와 NPA의 대립은 현재도 진행 중이며 대립이 끝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내일 당장 정부와 NPA가 화해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킬랑콕 마을에 사람들이 돌아오고 학교 운영이 재개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그것만으로도 기쁠 것 같다. 학교에 가는 아이의 순진한 눈망울이 언젠가는 평화의 한 줄기 빛이 되어 민다나오 섬을 밝혀주겠지.

 

마을 사람들이 직접 지은 교사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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