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야기

필리핀JTS 현지활동가 미오아저씨 


필리핀JTS에는 ‘살아있는 역사’로 이야기되는 ‘미오아저씨’가 있습니다. 필리핀JTS가 2003년 시작한 이래 2005년부터 JTS와 인연이 되었습니다. 거의 15여년의 시간을 수많은 한국활동가들이 거쳐 갔어도 ‘미오아저씨’는 늘 그 자리에서 제이티에스와 함께 했습니다. 그렇기에 ‘필리핀 제이티에스’하면 ‘미오아저씨’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로미오 스웰로(Romeo Suello)이고 보통 ‘미오’라고 부릅니다. 결혼을 했고 4명의 자녀가 있습니다. JTS에서 일하기 전에는 농부이자 건축 일을 하는 목수였습니다.

Q.JTS와 어떻게 처음 인연이 되었는지요?

제가 처음 JTS 활동을 하게 된 것은 알라원 학교 건축 때였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군청과 협력해서 일하던 때가 아니고, JTS가 푸드 포 워크(Food for work: 마을 사람들이 본인들의 자녀가 다닐 학교 건축에 참여하면서 소득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노동의 대가로 식량을 지원하는 방식)로 학교를 지을 때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직접 학교를 지어야 하는데,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학교 건축일과 도구 사용법을 알려줄 기술인력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바랑가이 캡틴을 만나면서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Q. 그렇게 인연이 되셨군요. 처음 하시는 일이었는데 JTS와 함께 하면서 어떠셨어요?

알라원 학교 공사를 푸드 포 워크로 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이 일은 하지 않고 앉아서 담배를 피우는 등 게으름을 피웠습니다. 당시 저는 JTS와 처음 일하면서 배운 대로 매일 매일 일지를 쓰면서 엄격하게 일을 하던 때라 그 모습이 눈에 잘 띄었습니다. 화가 난 제가 “이 일은 당신과 당신들 자식을 위한 것인데! 왜 그러냐?”고 말하자 저를 죽이겠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 반응에 크게 실망하여 거의 한 달간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일을 시작했을 때는, 일하지 않으면 푸드 포 워크를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마을 사람들에게 주지시킨 후였습니다.

알라원은 험준한 산과 좁고 미끄러운 길 때문에, 일일이 자재를 나르고 옮기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근데 더 큰 문제는 DENR(The Department of Environment and Natural Resources의 약자. 우리나라로 치면 환경부에 해당함)에서 알라원이 있는 곳이 자연보호구역이라며 학교 짓는 것을 반대하고, 지역의 나무를 자르거나 옮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몇 달간 공사가 중지되기도 하였으나, 다행히도 JTS가 DENR과 협상을 해서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어려움을 해결하면서 완성된 학교라, 법륜스님이 준공식을 하러 오셨을 때는 정말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Q. 활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알라원으로 인연을 맺은 이후, 라나오 델 수르, 라나오 델 노르떼, 꼬타바토 지역 등 더 많은 지역에서 JTS 활동을 해나갔습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지역은 다물록군입니다. 군청이 학교 건축의 파트너로서 기술지원과 인력 코디네이터를 제공하는 등 함께 일했던 다물록군 프로젝트는, 도동 보라(현 JTS 이사, 초창기 활동가)가 활동가 최기진과 저를 다물록총코시장에게 소개해 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NGO 단체 경험과 사람들을 조직하고 가르치는 등의 경험이 우리와 비슷했던 총코시장님 덕분에, JTS와 군청의 협력은 잘 됐고 재미있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무슬림, 크리스천, 원주민이 섞여 사는 다물록군의 경계지역 내 행정구역의 혼선도 있었습니다. 다물록군으로 알고 있던 곳이 코타바토군에 속하기도 하고, 키바웨군인 줄 알았는데 다물록군에 속한 마을이 있기도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총코시장은 경계지역의 다른 군에 속한 곳도 모두 지원해 주었습니다. 일하는 동안 크리스천과 무슬림이 계속 싸웠고, 늘 분쟁이 있었기에 평화 만들기의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다물록의 첫 사업지였던 미카실리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오죽하면 한국 활동가가 “죽겠다”라는 말을 연발해서 저도 그 말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주 재미난 시간이었습니다.

발루드에서는 코만도인 카운팅이 매우 협조적이었는데, 그곳은 무장지역으로 농사도 짓지 않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학교를 만들고 농사를 짓는 것에 대한 대표님의 이야기와 우리의 프로젝트를 통해 농장개발 등의 긍정적인 변화를 보여주었습니다.


 

Q. 꽤 많은 한국인 활동가들과 같이 일했는데요, 기억에 남는 활동가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초이(활동가 최정연)는 잊을 수 없습니다. 처음으로 같이 일을 했던 한국인 활동가였고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그녀는 JTS의 방침과 그 외의 많은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기진(활동가 최기진)은 1년인가 1년 반인가 일했는데, 같이 송코도 가고 많은 주제로 토론하기도 해서 잊지 못합니다. 지홍(활동가 송지홍)은 초이가 간 다음에 왔는데 매우 영리하였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토론과 연구를 하였고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시작하면 끝이 없던 토론에 대한 의구심은, 차츰 그 토론이 우리 사업과 활동가들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Q. 개인적으로 겪는 어려움도 많으셨을 것 같은데, 혹시 일을 그만두려고 생각했던 적은 없으신가요?

제레미의 대학 진학 시기에 당시 책임자였던 지홍에게 일을 그만두겠다고 얘기했었습니다. JTS에 임금을 올려달라고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교육비의 부담이 컸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을 알게 된 지홍과 한국 활동가들이 제레미가 진학할 수 있는 학교와 장학금제도도 알아봐 주고, 대표님이 개인적으로 장학금과 한 달 생활비 등을 지원해 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제레미가 공부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제레미가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로 임용된 지금, 저는 매우 행복합니다. 그 마음에 힘입어, 늘 그래왔던 것처럼 JTS에 헌신하며 지내고자 합니다.

 Q. JTS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동력은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에게 제가 가진 기술을 이용해서 도움을 주고, 정부와 협력하여 활동하는 것은 아주 보람된 일입니다. 다양한 부족으로 이루어진 마을도 JTS의 손길이 닿으면 평화롭고 행복한 마을로 변화됩니다. 처음에는 선생님도 없고, 오직 마을 사람들만 있다 보니 통역 일도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대표님과 한국 활동가들에게는 영어로, 마을 사람들에게 비사야어로 서로의 이야기를 전하다 보니 영어가 많이 늘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대표님에게 “내가 너무 늙었고 JTS 일은 점점 더 개발되면서 엄격하게 관리가 되어야 하는데, 빨리빨리 하라고 요구하는 것 때문에 힘듭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대표님이 “당신과 나는 아무도 없을 때부터 오랜 활동을 같이했고, 한국 활동가들은 파견 시, 목적을 갖고 오기 때문에 그것을 이루기 위해 빨리빨리 하는 것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럴 때면 그 사람들에게 말해라. 난 기계가 아니라고. 당신 없이 누가 이 센터를 관리하겠나. 당신의 고마움을 나는 충분히 알고 있으니 그런 것에 개의치 말고 지금처럼 잘 부탁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대표님의 믿음과 저의 도움이 필요한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저를 움직이는 힘입니다.


Q.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이나 바람이 있으시다면요?

큰 꿈은 없습니다. 컴퓨터 사용법을 배우고, 사무실에서 집이 가깝고, 농장을 개발하고, 한국 활동가들과 함께 일하는 지금이 매우 행복합니다. JTS가 저를 해고하지 않는 한 지금처럼 도움이 필요한 어느 곳에서든 JTS와 함께 하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그동안 들을 수 없었던 필리핀JTS 현지활동가로서의 미오아저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참 감사하고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미오아저씨께서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필리핀JTS를 지켜주실 것임을 알기에, 필리핀JTS는 늘 든든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페이스북 댓글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게시판의 성격에 맞지 않는 글이나, 상업적 홍보글은 통보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이름     비밀번호     인증번호     CD 댓글등록
다음글 중간고사 시험을 치는 유치원 UKG(7세)
이전글 JTS 서포터즈 3기 현장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