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캄보디아에서 온 편지 5
안녕, 연잎.


 뙤약볕을 피해 앉은 열대나무 그늘 아래에서 늦겨울 시린 바람을 뚫고 새 봄을 향해 영차영차 나아가고 있을 너의 모습이 떠올랐던 건, 같은 하늘 아래 늘 닿아있는 우리의 마음 때문이었을 거야. 너의 손을 빌려 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내며 내 마음으로 네 바람을 막아 줄 수 있길 기도해. 서로에게 힘이 되는 지금 이 순간. 소중하고 감사해.

 내가 만날 그저 덥다고만 해서 캄보디아가 단순히 더운 나라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곳에도 엄연히 사계절이 존재해. 비가 오고 꽤 더운 여름, 비가 오고 더운 여름, 비가 안 오고 더운 여름, 비가 안 오고 무지막지하게 더운 여름. 어때? 굉장히 복잡하게 더운 나라가 아닐 수 없지? 



 온각 종류의 더위 중에서도 비 한 방울 없이 건조하고 더운 여름이 계속되는 요즘은 매일 같이 먼지가 눈처럼 내려. 한낮에 내린 붉은 먼지가 산천초목을 물들이고, 옷가지를 물들이고, 사무실 바닥을 물들이지. 한 번의 외출에 더러워지는 옷가지와 한나절 안에 흙투성이로 변하는 바닥을 보노라면 빨래도 청소도 부질없는 짓이요 놓아버리는 것이 자유와 행복의 길이라고 생각해 버리기 일쑤야.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을 고려하지 않고 지켜야 할 행동으로써 정해진 원칙과 이 원칙에 따라 해야 할 일로써 나누어진 소임이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어.

 잠자리에 들면서부터 마음으로 기도를 하지. 오늘밤만큼은 시간이 느릿느릿 가서 5시에 일어나는 것이 마치 7시에 깨는 듯 가뿐했으면 좋겠다고. 간절함이 부족해서일까? 매일 어김없이 새벽 3시 같은 5시 기상이지. 그래도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기도 방석 위에 올라가는 것은, 이것이 원칙이기 때문이야.


 비몽사몽간에 기도문을 외고 한바탕 절을 하고 나면 마음에서 올라온 열기로 온 몸이 뜨거워져. 응. 가만히 있어도 더운데 움직이니깐 더 더운 거야. 그래도 가만히 앉아 생각해 보 면 최소한 몸을 위한 운동을 마친 셈이고 최대한 마음을 위한 운동도 마친 셈이야. 자연히 미소가 그려져.

 그리곤 이어지는 청소 소임. 오늘은 먼지가 조금이라도 덜 들어와서 걸레질이 수월했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이 불어오는 먼지바람에 비해 턱 없이 약하다는 것은 언제나 더 한 양으로 쌓여진 붉은 먼지를 통해 알 수 있지. 바닥을 물로 부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만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내 손에 쥐어진 건 내 얼굴만 한 크기의 대걸레 하나뿐이야. 묵묵히 닦고 빨고 닦고 빨고 빨고 닦고 빨고 빨다보면 걸레를 빨은 만큼 그 걸레로 바닥을 닦은 만큼 바닥은 깨끗해져 있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딱 내가 한 그만큼. 깨끗해진 바닥 위로 다시 바람은 불어올 테고 곧 먼지가 쌓이겠지만 나는 또 걸레를 빨고 바닥을 닦겠지. 이것이 나의 소임이니깐.  


 
  이어지는 화장실 청소도 점심 공양 당번도 원칙에 따라 정해진 소임을 해나가는 일의 연속이야. 각각의 순간에서 일어나는 마음과 그 마음을 쫓아 생기는 또 다른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에 관계없이 지켜가는 원칙에 따르는 행동에서 새롭게 생기는 마음.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실제로 무엇이 나를 더 자유롭게 하는지, 어떻게 하는 것이 행복한 것인지 배우게 돼. 더해서 어떤 행동이 나의 행복, 나의 자유를 넘어서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인지 자연스럽게 익히고 있는 것 같아. 이 시간들이 쌓이다 보면 원칙과 소임을 넘어서 내가 좋아서 그냥 하게 되는 그날이 오지 않을까?
 
 나의 마음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그 날, 내 마음으로 온 세상이 되어버리는 그 때, 왠지 난 너를 진정으로 사랑한다 말 할 수 있을 것 같아.
 보고 싶어.
 건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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