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스리랑카 JTS 봉사자   오성근



 이 스리랑카란 나라에 도착한지도 한 달하고도 반이 지났다.
생전 처음 와보는 나라, 그리고 어떤 동료도 없는 “나홀로” 파견.
다른 JTS 지부들은 대부분 직접 사업을 하고 있는데 반해 나는 이곳에서 모니터링 업무를 하고 있다.
현지 NGO인 Sewalanka Foundation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 현재 있는 곳은 스리랑카 중북부에 위치한 고대도시 Anuradhapura이고 이곳을 기반으로 Anuradhapura, Vavuniya, Trincomalee 이렇게 3개 지역 9개 군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현재 프로젝트는 KOICA 지원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지역 위생시설 및 농업기반시설 개,보수를 중점으로 하고 있다. 

 스리랑카는 지난 26년간 종교 및 종족 분쟁이 있었다. 인구의 대다수인 70%를 차지하는 불교계 싱할라족과 15%의 힌두계 타밀족, 그리고 아랍 상인의 후예로 추정되는 8%가량의 이슬람계 무어인, 그리고 소수의 기독교인들이 있다. 
 
 2009년 내전 종식 이후 타 지역으로 피난 갔던 사람들이 다시 자신들의 고향으로 재정착하고 있으나 그들을 맞이하는 고향은 이미 타밀반군 지역에 있으면서 많은 인프라들이 파괴된 채의 그것이었다. 특히, Vavuniya, Trincomalee의 경우 과거 타밀반군의 지역이었고 다른 곳보다 타밀족의 비율이 높은 곳이다.

 Anuradhapura의 경우는 대부분이 싱할라족인 지역이다. 스리랑카 내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이고 다른 곳의 경우 쓰나미나 분쟁 등으로 국제적인 지원과 관심을 받았지만 정작 이곳은 아무런 관심도 지원도 받지 못하는 지역이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지역에 비해 현저하게 생활수준이나 경제 여건이 떨어진다.

 이곳 스리랑카에 있으면서 느끼는 것은 분쟁이란 것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2009년 내전을 종식했으나 Vavuniya나 Trincomalee의 경우, 실제로 모니터링을 가보면 중무장한 수많은 군인과 경찰들을 볼 수도 있다. 가끔은 시내 한복판에서도 중장갑차를 탄 채 삼엄하게 경계하고 있는 특수부대 병력 등을 볼 수도 있다.

 이런 분쟁 하에서 가장 고통에 신음하는 것은 민초들이다. 그들에겐 싱할라나 타밀이나 무슬림이나 모두 지난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온 이웃들일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전이라는 이름하에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했으며 증오하기도 했다. 분쟁, 그리고 2004년의 쓰나미로 인해 많은 NGO들의 지원이 끊이질 않았다.

 그 지원 가운데는 실적을 올리기 위한 묻지마식 지원이 많았고 그로 인해 너무 많은 돈이 풀리면서 지난 8여년 동안 물가는 3배정도 폭등하게 되는 심각한 인플레이션에 직면하게 되었다.

 현재는 많은 NGO들이 스리랑카를 떠났거나 떠나고 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내전 종식이후 안정되면서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고 있다. 현재는 나라 곳곳이 내전으로 인해 손대지 못했던 도로 건설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스리랑카의 경우 인도와는 분명히 다른 문화이다. 인도아대륙의 문화권이며 과거 대영제국의 일부였다는 점에서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와 많은 공통점이 있으나 다른 어떤 곳보다 상당히 깨끗하다. 불교가 사회 깊숙이 자리잡고 있어서 국민들은 불심이 무척이나 깊다.

 사람들은 상당히 친절하면서 외국인에 대해서 상당히 호의적이고 한편으론 수줍어한다. 다른 곳보다 영어가능인구 비율이 높으며 전반적으론 사회주의를 표방한 국가이며 과거 대영제국의 식민지여서 그런지 어느 정도 체계적인 면도 있다.


사실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 모니터링 업무로 인해서 그런지 기본적으로 의심을 바탕에 깔고 모든 것을 대했던 거 같다. 3세계이고 많은 부패가 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 그리고 처음에 너무 행정적인 편의에 입각하여 일을 한다는 느낌 때문에 그랬던 거 같다.

 그리고 우기가 오는 10월 전까지 이 프로젝트를 마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그 초조함, 불안감으로 인해 처음에 엄청나게 까탈스럽게 대했다. 의사결정시에도 무조건 내 입장만을 관철시키려고 했다 자신들의 상황을 이야기할 때 단지 핑계로만 치부하였다. 한국에서와 같은 빠른 의사결정과 진행을 원했지만 이곳에서는 늘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그 기다림의 시간동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투명하지 않다는 것이 결국 내 고정관념이고 그냥 내 편견이라는 이었으며 그들은 그냥 그들의 방식대로 일을 할뿐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이 프로젝트를 너무 내 것으로 삼아 욕심내고 있었던 것 같다. 과정보다 결과에 집착하는 나를 보면서 내 욕심을 한번 내려놓게 되었다. 

  또, 내가 의심을 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 마음이 상대에게 전달되는 것 같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의심을 받으면서 함께 일을 하는 입장이라면 과연 내가 최선을 다하면서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결국 상대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존중이 그 상대를 최선을 다하게끔 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을 믿기 시작하였다. 답답하지만 믿고 기다리기 시작하였다. 내가 본부에 욕을 좀 먹더라도 그리고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그 방법을 택했다.
 
  어느 날 그전까지 내가 가장 의심하고 거리를 두었던 회계담당인 친구가 나에게 미안하다며 자신이 실수했다며 결제 낸 것을 가지고 왔다. 나도 같이 크로스 체크하다가 빼먹은 부분이었다. 그냥 덮어뒀어도 내가 모르고 지나갔을 것인데 그런 것까지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그가 주문할 때 조금이라도 단가를 낮추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그 전부터 그렇게 일을 해왔을 것이다. 다만, 내가 낀 색안경으로 인해 그 모습을 못 보았을 따름일 것이다.

 얼마 전 타국에서 첫 생일을 맞이하였다. 이곳 세와랑카 아일랜더센터 모든 사람들이 축하를 해줬다. 이곳에서 일하는 밥하는 할아버지, 이곳에서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 그리고 직원들과 농장의 인부, 운전기사들까지 모두 함께 축하를 해줬다. 생크림이 아닌 설탕으로 만든 크림으로 조잡하게 데코레이션한 생일케이크, 그리고 이쑤시개로 만든 조잡한 생일 촛불에 참 울컥했다.
 
  축하해주는 그들의 눈빛에서 나는 진심을 느꼈다. 나는 이들을 의심하고 차갑게 대했건만 그들은 진심으로 나를 친구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가 함께 모여서 삐뚤빼뚤하게 내가 엉망으로 자른 케이크를 한조각씩 사람들에게 돌리면서 참 행복했다.

  이 곳의 삶은 늘 느리고 늘 기다림의 연속이다. 어떤 때는 기다리기만 해서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란 의심이 들 때도 있기도 하지만 이것도 하나의 과정인 듯싶다.
이곳의 순박한 스리랑카 사람들. 그리고 아름다운 이곳 스리랑카.

  지금 이곳에 있어서 진정으로 행복하다. people & place...
 보후머 이쓰뚜시 스리랑카.(정말 고마워요, 스리랑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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