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필리핀JTS 배명숙


‘나무를 산 길목에 좀 심으면 어떨까요? 그늘도 제공해 주고 걸을 때 이렇게 덥지는 않을 것 같아요’
학교에 오르는 산길을 걷다가 뜨거운 땡볕에 입이 바짝 타들어가고 발걸음이 무겁다고 느껴질 때 앞서 걷던 지역정부 협력자 제시에게 넌지시 제안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곳 밭주인과 통행하는 사람들, 말 주인들이 나무 심는 것을 찬성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매일 비가 오고 햇볕에 길이 잘 말라야 하는데, 나무가 있으면 그늘에 길이 잘 마르지 않고 질척거려 통행 하는데 불편한 것이 주요 이유입니다. 밭주인은 자신의 밭에 옥수수나 기타 작물을 심는 것을 원하지 나무 심는 것은 꺼려 한다고 합니다. 있는 나무마저 지나 디니는 말 주인들이 가지를 쳐달라고 요청을 한다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질척거리는 땅이 보이고, 나에게는 나무 그늘이 보입니다. 사물을 보는 관점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그 길에서 알았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연구를 해 보자고 제안을 하였습니다. 그늘도 제공하고 땅도 질척거리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말이죠.




교과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에서 교과서 없이 수업 하는게 가능하기나 한가’ 라고 생각하는 우리들과 ‘교과서 없이도 선생님이 수업을 잘 지도하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교육청 관계자 사이의 좁힐 수 없는 간격.
수업 시간에 교과서가 없으면 선생님께 야단을 맞는다? 이곳 민다나오 오지 마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가지고 다닐 교과서가 없는 상황에서 이 아이들은 무엇을 갖고 가지 않으면 선생님께 야단을 맞을라나요?



현장의 선생님은 어떤지 물어보았습니다.
교과서가 있으면 좋으나 현실적으로는 부족한 상황이고 그나마 선생님에게 지원되는 교과서마저도 넉넉하지 않은 아주 어려운 상황이라고 합니다.


아~ 그러면 JTS가 교육청의 역할을 해보는 건 어떤가.


이러한 맥락에서 교과서 지원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4월부터 지역 교육청을 찾아가 교과서 지원 계획에 대해 문의하고 지원을 요청하는 일을 여러 번 반복적으로 진행하곤 했습니다. 예산이 없어서 다 지급하지 못하고 실상은 선생님이 교과서 없이도 수업을 할 수 있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는 답변을 듣곤 하였습니다.
당연히 있어야 할, 당연히 지급 받아야 할 교과서가 이렇게 중요치 않게 되는 상황에서 JTS는 고민을 하였습니다. 계속해서 교육청이 지원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요청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원을 할 것인가,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우선 어떤 교재가 적합한지, 또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과목과 그 샘플을 얻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인근 도시의 초등학교에서 교과서 사진을 찍어오기도 하고, 선생님들에게 지원되는 교과서 이름을 물어보고, 다물록 지역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있는 교재 샘플 수령까지 두어 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지역정부의 협조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 곳인 다물록 시 교육청 관계자에게 도시의 학교에서 사용하는 교재 샘플을 받아서 검토해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JTS지원 학교 선생님들과의 미팅을 통해 교과서 지원 계획을 공유하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JTS가 이번에는 영어와 수학책을 우선 지원하고 순차적으로 늘려나가는 것으로 결정하였습니다.

이제는 실행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교과서 지원 프로젝트.

마닐라에 있는 출판사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책의 재고가 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재고가 많다네요. 우리가 지원하려는 학생은 총 1,200여 명이었고 주문을 완료하고 마닐라에서 이 곳 민다나오로 큰 배를 이용해서 배달이 된 후 우리는 트럭을 가지고 가서 싣고 센터로 돌아옵니다. 무겁기도 하고 비마저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교육청에서 산간 오지에 있는 학교에 책을 주는 것도 만만치 않겠다는 상상을 하면서 내립니다.
학교별로 포장하는 일도 세심한 작업이 필요합니다. 책이 비에 젖지 않게 하려면 비닐로 동여매는 작업을 수차례 반복하고 학교 이름과 숫자를 기록하는 등 포장하는 작업에 여러 사람의 손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힘들더라고 이렇게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JTS가 민다나오의 교육청 역할을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구나 하는 것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누가 책을 주면 어떠랴, 아이들이 이 책을 가지고 공부하고 행복해한다면 누군들 좋지 않으랴.



드디어 책을 배달하는 날.
9월 말부터 10월 셋째주까지 한 달여 동안 아이들에게 책을 전달하였습니다.
준비하는 것만큼 배달하는 것은 더욱 많은 사람들의 손을 빌려야 했습니다.
영어, 수학 교과서는 기나긴 여행을 시작합니다.
트럭을 타고 말과 보트로 강을 건너는 것은 기본이고 아이들과 장정이 머리와 어깨에 이고 다리를 건너 한 명 한 명의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을 거치는 기나긴 대장정입니다.



오버루킹에 가는 날은 전날 저녁부터 체기가 있어서 산을 오르는 것이 쉽지 않고 부담스럽기까지 한 날이었습니다. 그래도 교과서를 짊어지고 아주 빠른 속도로 가는 청년 리더만큼은 아니지만, 아주 천천히 산을 오르고 올라 어느새 마을에 도착하였습니다.

학교에 도착하니 교실마다 수업하는 소리가 정겹게 들려오고 편안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출석률이 아주 좋은 편이었고, 개별적으로 영어와 수학 교재를 배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은 교육청에서 지급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 좋다는 반응을 보였고, 잠깐 인터뷰를 했던 학생과 학부모는 앞으로 결석을 하지 않을 것이고, 행복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학부모, 마을 주민들, 선생님과 아이들의 다소 들떠보이는 모습이 좋아 보였고, 어느새 내 몸의 컨디션은 회복이 되었습니다. 마을에 다녀오는 것이 단순한 일은 아닌가 봅니다. 약을 먹은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오니 말입니다.

때로는 산간오지 마을에 다니는 것이 힘에 부치기도 합니다.
사라와곤은 우리가 지원하는 물품이 매번 학교에 늦게 도착해서 시간이 지체되곤 하였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책을 지원하고 보람을 느끼기는 커녕 오르는 길이 불편하고 맘대로 안되는 마을 사람들이 밉고 짜증스럽기도 하였습니다.



발루드에 가는 날 역시 기운이 나지 않고 덜커덩 거리는 트럭 만큼이나 마음도 그러한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시간여 후 뚜곳이라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면서 기분이 싹 좋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학교에서 고학년 학생 20여명이 내려와서 책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발루드는 리더를 중심으로 마을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곳인데 아이들도 참 용맹스러워 보였습니다. 이런 아이들과 함께 오르면서 중간에 쉬어 가는 아이들에게 “까포이 야(힘들지)?”이렇게 묻고 또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이 고맙고 기특해 보이는 날이었습니다.



1,200여명의 학생들에게 2,400권의 책을 선물하는 것이 혼자의 힘으로는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여러 사람들의 지원과 노고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관점이 다른 것을 확인하고 달라도 괜찮다는 것을 느껴가면서 일했던 이번 교과서 지원 프로젝트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살라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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