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오늘은 만타부 마을 초등학교의 첫 번째 종업식이 있는 날이다. 지난 밤에 내린 비로 땅이 촉촉하게 젖은 이른 아침에 약간의 긴장된 발걸음으로 만타부로 향했다. 길 안내를 맡은 현지인 띵을 정신 없이 쫓아가다 보면 가끔은 아슬아슬 미끄러울 때도 있고 숨이 헉헉 차오르기도 했지만 꾸준히 고개를 넘고 개울을 건너다 보니 어느새 만타부 마을에 도착해 있었다. 낮은 풀이 자라는 드넓은 평지에 흡사 아담한 산장을 연상케 하는 주상가옥(柱上家屋) 형태의 만타부 초등학교가 눈앞에 펼쳐졌다.

행사 시작 시간보다 약간 이른 시간이었지만 꽤 많은 아이들과 마을 주민들이 이미 학교 앞마당에 모여 있었다. 스피커에서는 흥겨운 팝송이 흘러 나오고 무대 중앙에는 '제 1회 종업식(The 1st Recognition Day)'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라켈 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교사숙소로 보이는 듯한 건물로 들어갔다. 만타부 초등학교에 상주하는 라켈, 끄리스 선생님께 인사하고 손님인 듯한 리보나면(面) 교육부 관계자들과 통성명을 했다. 고구마와 닭고기를 맛보라고 하면서 접시에 바나나 잎을 깔아 주시길래 접시에 밥 한 덩어리와 닭다리 하나, 야채 반찬을 조금 담아 먹었다. 이렇게 깊은 산중에 먹거리도 풍부하지 않을 텐데 특별한 날에 손님이 왔다고 이렇게 후하게 대접해 주시니 참 고마울 따름이다. 그래서 얼마 전에 농장에서 주워들은 비사야 한마디로 인사했다. "람미까요(맛있네요)"

▲ 제 1회 종업식임을 알리는 무대 뒤 장막

▲ 바나나 잎을 깐 접시에 담은 맛있는 현지 음식

▲ 식사 후 학교 선생님들 및 리보나 지역 교육 담당자들과 함께

9시 반이 넘어서야 종업식이 시작되었다. 먼저 여는 공연으로 1학년 학생들의 민속춤 공연이 있었다. 나뭇잎으로 만든 전통 복장을 입고 몇 명은 북을 치고 몇 명은 창을 가지고 춤을 추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이어서 중요 인사들의 메시지와 각 학년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상장과 증명서(certificate)를 주는 시간이 이어졌다. 나도 JTS를 대표하는 손님으로서 무대에서 상을 받는 아이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유심히 지켜보니 '우등상'이나 '수학 교과수상', 개근상' 같이 익숙한 제목의 상장도 있었지만 '깨끗한 어린이 상', '정직한 어린이 상', '단정한(neat) 어린이 상' 같이 다소 독특한 상장이 눈에 띄었다. 성실하고 학업성취가 뛰어난 학생들에 대한 보상을 하면서도 그렇지 못한 학생들에게도 나름의 장점을 발견하여 선물을 주는 교육 문화는 참 본받을만하다. 한편 1학년 학생들이나 그 아래 유치원, 일일 보호(day care) 센터의 아이들은 각자 '건축 설계사, '간호사', '변호사' 등 다양한 직업이 적힌 어깨띠를 매고 있었다. 종업식이 거의 끝날 때쯤 나도 그들에게 영어로 메시지를 전할 기회가 있었는데 "학교만이 희망이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 종업식을 마친 학생들과 단체사진

▲ 전통복장을 입은 아이

나중에 선생님들과 얘기할 기회가 있을 때 "내가 알기로 2006년에 지어졌는데 왜 오늘에서야 첫 번째 종업식을 하느냐"고 조심스레 물어봤다. 그랬더니 학교가 지어진 이후 정부의 공식적인 허가가 나오지 않았고 교사들에 대한 임금도 지급되지 않아 리보나 면의 교육 예산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선생님들도 자원봉사를 해야만 했다고 전했다.
작년에야 비로소 정부의 공식적인 허가를 얻어 이번 1학년 학생들부터 교육부의 학력 인정을 받게 되므로 '제 1회 종업식이 되는 셈이다. 필리핀 정부의 까다로운 행정절차와 소극적인 교사 파견으로 인해 학교가 어렵사리 운영됐다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제라도 교육부의 허가를 얻어 정식 교사도 파견되었으니 만타부 산골 초등학교에 희망이 꽃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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