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 이야기



인도네시아요? 내가 좋아서 가요.

 

지난 7월 9일, 인도네시아로 출국하는 자원봉사자 임희성님과 황효순, 이상임, 김애경(JTS 사무국장)님이 저녁식사 후 조촐한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 이야기를 여러분께 들려드립니다.

 

이상임: 아 근데 희성님, 결혼하셨나요?

임희성: 아뇨 결혼 안했는데요.

이: 그럼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데요.

임: 올해 마흔네 살인데요.

이: 아∼ 그럼 젊은 오빠시구나. (웃음)

 

이: 낼 출국이라고 들었는데 짐은 다 싸셨어요?

임: 뭐 짐이라고 특별히 쌀게 있나요. 옷, 세면도구, 읽을 책 한권, 본 서류, 보고서 준비에 필요한 거.. 뭐 다 웬만하면 몸에 지니고 다니는 스타일이라 별로 짐도 없어요.

이: 책은 어떤 책을 챙기셨어요?

임: 인도네시아와 관련된 책인데 그 책 보니까 인도네시아 경관이 너무 좋더라고요.

이: 가시는 곳이 인도네시아 어디예요?

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예요.

황: 여름인데 그곳 날씨는 어때요?

임: 인도 같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인도는 그냥 뙤약볕이잖아요. 먼지만 폴폴 날리고.. 근데 거기는 숲도 있고 나무 많다고 하더라고요. 고산지대라 아침저녁은 시원하고.. 볕을 피할 곳은 있대요.. 나무가 있으니까...

이: 근데 거기 지진 났었던데 아닌가요?

김애경: 작년에 났었죠.

임: 작년에 강도 7∼8 정도의 지진이 서부 수마트라에 났었어요.

이: 그럼 위험한 동네네요. 근데 거기서 무슨 일을 하시게 되는 거예요?

   

임: 작년에는 JTS가 긴급구호 하러 갔는데 올해는 지진 피해가 심각한 동네 요청으로 주택복구 사업을 하려고요.. 집 지어주러 가는 거죠.

이: 그럼 피해자 집들을 다 지어주는 거예요? 어떻게 신청을 받나요?

임: 동네에서 피해가 심각한 주민들로부터 신청을 받는 거죠. 다 지어주는 것은 아니고.. 그것도 JTS 사업이 원래 그렇지만 우리가 다 지어주는 게 아니고 건축자재 비용이나 이런 건 우리가 대고 주민들이 두레나 품앗이 하는 것처럼 같이 짓는 거죠. 원래 JTS 원칙이 돈 주고 사람 쓰지 않으니까..

이: 그럼 희성님은 집 짓는 것에서 무슨 역할을 맡게 되는 거예요?

임: 관리, 현장 모니터링, 진행상황을 본부에 보고하고 예산 계획에 맞게 집행하고 그런 것 등이죠. JTS에서 받은 기부금으로 진행하는 거니까요.

이: 그럼 현지에 JTS 스텝이 있나요?

임: 따로 스텝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JTS 활동을 도와주는 현지 사람이 있기는 하죠.. 에코 스랭이라는 분이예요.

이: 그럼 한국인은 혼자예요?.

임: 그렇죠.. 한국에서 저 혼자 가는 거고, 가서 인도네시아 사람하고 만나게 되는 거죠.

이: 그럼 좀 외롭기도 하겠네요. 말도 안통하고.. 일하다 보면 의논할 사람이 필요할 텐데... 근데 거기 집지어주는 일은 지역 주민들이랑 합의가 된 상태인가요?

김: 그건 이미 JTS 대표가 가서 주민들과 MOU합의서를 작성했어요. 기자들 불러서 행사하고.. 지역에 정보 공유하고 지을 사람들 명단까지 받아 왔어요.

이: 그래요? 그럼 몇 채나 짓게 되는 건가요?

임: 모두 6개 마을에 5채씩 30가구 정도 받았어요. 견적을 보니까 다른 단체보다 더 지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 예산이 얼마나 되는데요?

임: 코이카 1억, JTS 1억 5천. 총 2억 5천으로 지어요.

   


이:
직업이 목수라고 들었는데요.

임: 네, 목수예요.

이: 근데 무슨 계기로 목수를 하게 되셨어요? 그 시대에 목수 교육을 받는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닌 것 같아서요.

임: 12년 전.. 그러니까 30대 초반이죠. 먹고 살려고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죠. 건축일은 우연한 기회에 아는 사람 소개로 현장에 들어가게 됐는데 거기서 배우게 됐죠.. 처음에는 하기 싫었어요.. 이렇게까지 해서 먹고 살아야 하나... 2-3년은 수동적으로 배웠어요. 근데 갈수록 이게 아니다 싶어서 스스로 재미있으려고 노력했지요. 해보면서 몸부림치니까 아주 싫지는 않고 10년 정도 지나니까 나한테 맞는 것 같아요.

 

황효순: 그럼 어떻게 인도네시아에 파견 나가게 되었는지요?

임: 평화재단 이사한다고 도와달라고 해서 사무실 집기도 나르고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평화재단 강당에 필요한 연단을 만들게 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제가 하는 일이 목수라는 것도 알려지고 결정적으로 최기진활동가님이 인도네시아에 가보면 어떻겠냐고 권유를 했어요.

저도 좁은 국내에서 복작거리고 사는 것 보다 넓은 곳에서 바람도 쐬고, 견문도 쌓고 싶었고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기회가 되면 가겠다고 했죠. 그래서 바로 승낙하고 준비하게 된 거죠.

이: 그럼 JTS와 첫 인연은 어떻게 되세요?

임: 그러니까 멀리 올라가서 99년도에 불교방송 100일 법문 통해서 법륜스님을 알게 되었어요. 새벽시간에 스님의 법문을 듣는데 너무나도 마음에 딱딱 와 닿았어요. 필이 꽂혔다고 해야 되나요? 100일 동안 지방에서 라디오로 들었죠.

   

이: 그럼 목수 이전에는 무슨 일을 하셨어요?

임: 대학 졸업하고 기획사를 선배하고 차렸는데 3년 하다 말아먹고 그러다 공무원 시험 준비했죠. 철도청에서 공무원으로 1년 일하다가 재미없어서 그만 뒀어요.

이: 에구나.. 그 좋은 공무원을...(웃음) 그럼 대학에서는 무슨 공부를 하셨는데요?

임: 역사학과 졸업했어요. 저는 뭐랄까 고고학 같은 거에 관심이 있었어요. 그러다 다시 아는 선배와 생협활동을 하게 됐어요. 그때가 97년인가.. 생태, 공동체, 이런 단어들을 접하면서 내가 막연히 생각만 하고 살았던 것을 직접 준비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여기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는 완전히 그런 가치관의 세례를 받았다고 해야 하나? 그때 선배와 한 살림 생협을 분당에 차려서 같이 했죠. 근데 생협도 도시적인 삶이잖아요. 그러다 귀농을 생각하게 되었죠. 그래서 그때 귀농운동본부에서 귀농교육을 받고.. 제가 아마 귀농교육 1기였을 거예요. 푸른꿈고등학교에서 합숙하면서 교육 받았었는데.. 그렇게 귀농교육을 받고 여기저기 새로운 농법을 실험하고 있는 현장에 가서 농사짓는 법을 배우고 고향인 목포 인근에 내려가게 되었죠. 그때 시골집에서 스님 법문을 들은 거죠. 그때가 이런 삶이 있었구나 하고 제 자신이 변화되는 시기였는데 그런 맥락 속에서 스님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던 거 같아요.

근데 그 때 농사를 못 짓고 목수 일을 하게 되었어요. 한옥 짓는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죠. 그러다가 2003년 깨달음의 장 다녀오고.. 그전까지는 계속 정토지만 받아보다가.. 2006년 인도에 갔어요. 3년간 산다고 결심하고 갔는데 4개월하고 돌아오게 됐죠. 인도에서 특별히 제가 해야 할 일감이 그렇게 없는 것 같았거든요. 그러다 정토수련원에 정자를 지어달라고 요청이 와서 2006년 겨울 문경 정토수련원 공양간 옆 다리 위에 정자를 짓게 되었죠. 2007∼8년에는 문경 불사를 하게 되고. 2009년도에 JTS를 알게 되고 최기진님을 만나고.. 그렇게 된 거죠. 사이사이 우여곡절이 있지만 인생 고비마다 책을 통해서, 라디오를 통해서 전환점을 돌아온 것 같아요.

 
- 사진 왼쪽부터 황효순, 이상임, 임희성, 김애경님


이:
그럼 인도네시아는 몇 년 정도 예상하고 가시는 거예요?

임: 짧으면 1년, 길면 2-3년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이: 그럼 한국에는 얼마나 자주 나오시게 되는 건데요?

임: 적어도 1년에 한번은 나오지 않겠어요? 각종 보고도 해야 하고..

황: 영어는 잘 준비하고 계신가요?

임: 계속 공부하고 있어요. 가는 지역에 한국 사람이 한사람도 없으니까.. 가면 에코씨와는 영어로 대화하고, 주민들하고는 인도네시아어로 해야 되는데 에코씨가 중간에서 역할을 해주겠죠. 저도 인도네시아어 배워야 되고요. 한국사람 없으니 인도네시아어가 금방 늘 것 같아요.

황: 그럼 인터넷은 되나요?

임: 숙소에 인터넷 갖추어지지 않을까 싶은데 있다고 해도 느릴 거예요. 아마 도시에 있는 pc방 이용하게 될지도 모르죠. 그거라도 잘 되면 다행이구요.

이: 현지 전기 사정은 어때요?

임: 아직 잘 모르겠어요. 상당히 열악하겠지요.

이: 앞으로 겨울이 다가오는데 날씨 추워지면 힘들 텐데요.

임: 거긴 겨울이 선선하다고 그러더라고요. 모르죠, 겪어보지 않았으니까..

황: 비상약 같은 건 준비하셨어요?

임: 일반 구급함에 든 약하고.. 현지에서 알아보고 해결해야지요. 너무 많이 가지고 가면 괜히 짐스럽고.. 필요한건 현지에서 물어보고 고입하려고요. 현지인들이 더 잘 알 테니까..

   

이: 내일이 출국인데 지금 마음은 어떠세요?

임: 담담해요. 남아 있는 사람이 호기심이 있는 것 같아요. (웃음)

이: 현지에서 식사는 혼자 해결하시는 거죠?

임: 그렇죠. 밥통사서 직접 밥해 먹어야죠. 전 먹는 건 그렇게 까탈스럽지 않아요.

이: 비행기 값이나 체류비용은 어떻게 해결하는 건가요?

김: 비행기 값은 자기가 부담하고 체류비용은 JTS에서 부담하게 되지요.

이: 비행기 값 JTS에서 안대줘요?

김: 네.. 왕복 비행기 값은 본인이 부담하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어요.

황: 누군가 그러는데 JTS는 돈 없으면 자원봉사 못하는 데라고 그러더라고요. (웃음)

   

이: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뭐예요?

임: 이런 얘기 하면 웃으실지 모르겠는데.. 전 예술 쪽으로 일하고 싶어요. 미술 쪽으로... 고고미술사 쪽에 관심이 좀 있었어요. 미술 쪽에 관심은 있는데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해요.

이: 꿈이나 비전 같은 건요?

임: 시골에 들어가서 농사짓고 목수 일 하면서 조용히 살고 싶어요. (웃음) 소박하게 사는 것이랄까?
제가 사실 회사 생활 했으면 지금 해외에 못갈 거예요. 이 일을 했으니 가는 거죠. 젊은 사람들이 많이 해외에 나가면 좋을 텐데.. 20∼30대는 밖으로 멀리 가서 견문 넓히면 좋겠어요. 한국이라는 좁은 바닥에서 취직 안 된다고 하지 말고, 나갈 생각을 했으면 해요. 청년 실업 얘기하고 있는데 사실 국내 실업자들 일 할 데는 많다고 생각해요. 어려운 일 안 하려고 하는 거지. 3D업종에는 일할 사람이 없다고 하잖아요. 생각 차이인데... 가장이 가족들 먹여 살리려고 생존을 위해서 일할 때 저는 아름답다고 느끼거든요. 저도 건축 일과는 안 맞았어요. 마음을 돌려 먹고 하니까 하게 된 거죠.

이: 어머니는 결혼 안하고 인도네시아 간다고 뭐라고 안하세요?

임: 당연히 물 건너가니까 걱정은 하시는데.. 이렇게 사는 것에 대해서 지금은 별 말씀 안 하세요. 마흔 살 까지는 결혼하라 하시면서 속상해 하셨죠. 마흔 넘으니까 놓으신 것 같아요.

이: 형제는 어떻게 되시는데요?

임: 제가 3남 1녀 중 둘째예요. 형제 모두 결혼했고요. 조카가 7명이예요. 2-3명씩 낳아서 대가족이죠. 형제 3명이 결혼 했으니 저 하나쯤은 이런 생활해도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일도 일이지만 인도네시아 가면 마음이 상쾌할 것 같아요. 1∼2년 혼자 어울릴 사람 없이.. 내가 좋아서 가요. 자기가 하고 싶으면 돈은 별로 상관없는 거 같아요. 내가 좋아서 내 돈 내서 내가 가서 주체가 되는 것이니까요.

 

임희성님. 인도네시아에서 건강하게 활동하시고 수마트라의 멋진 풍경과 그곳에서 현지인들과 알콩달콩 집짓는 이야기, 자주 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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